환기미술관의 특별전, 김환기의 그랜드 투어 ‘파리통신’ 전시에 다녀왔어요. 전시 마지막을 앞두고 잠시 시간을 내어 들렀습니다. 김환기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정현주 작가의 “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라는 책이었어요.
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 – 정현주 지음/예경 |
책에서는 김환기 작가뿐 아니라 그의 아내, 김향안 여사에 대한 이야기와 그 둘의 사랑을 정현주 작가의 관점으로 풀어냈어요. 첫 만남에서부터 이번 전시와 이어지는 파리 시절, 그리고 김환기 작가의 뉴욕 시절과 또 작가가 작고한 이후 김향안 여사가 다시 파리를 방문했던 시기의 이야기들이 담겨있어요.
자꾸 꿈을 꾸는 남자가 그 꿈을 현실이 되게 하는 아내를 만났다.
남자는 자꾸 큰 세상을 그렸고 아내는 그 큰 세상에 남편을 서게 했다.
함께 있음으로 해서 두 사람의 세상은 커지고 넓어졌다. 계속 꿈을 꿀 수 있었다.
– 정현주 <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 p40
이 글은 책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글이었습니다. 두사람이 서로 사랑을 바탕으로 의지하고, 한 걸음씩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보며 ‘그렇게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 반려자로 함께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서로로 인해 삶이 풍요롭겠구나’ 하고 생각했었어요. 1950년대에 들어 김환기 작가는 자신의 미술이 전 세계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서양 미술의 성지인 ‘파리’로 떠납니다. 그 과정에서 김향안 여사가 1년 먼저 떠나 프랑스어와 미술을 공부하며 자리를 잡고 남편을 기다려요. 그렇게 두 분이 40대에 한국을 떠나 파리에서 4년을 머물게 됩니다. 이번 환기 미술관 특별전은, 그 4년의 시간을 담고 있어요.
환기 미술관엔 처음 가봤는데 부암동 한적한 곳에 위치하여 좋았습니다. 관람객도 미리 예약한 한정된 인원만 들어갈 수 있어서 다른 관람객들과 동선이 자주 겹치지 않았고, 천천히 시간을 두며 관람하기 좋았어요. 제가 방문했던 때에는 건물 내부에 햇볕이 들어와 따뜻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전시의 모든 내용이 좋았으나, 저는 개인적으로 특히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되는 신 소장품 섹션이 참 좋았습니다. 연필과 볼펜으로 그려진 드로잉 작품으로, 그림의 선이 매력적이었어요. 또 눈길을 가장 많이 끌었던 작품은 작가의 그림을 바탕으로 프랑스에서 제작한 비트라유(Vitrail), 즉 채색된 유리 창이었어요. 햇볕에 비치던 우유빛 창이 참 아름다워 한참을 바라봤습니다. 이 작품만을 보기 위해 환기 미술관에 다시 가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전시에 다녀온 뒤 도록을 보는데, 1957년 초가을의 남프랑스를 여행한 글이 있더라고요. 저도 2013년에 프랑스 화가들의 발자취를 따라 남프랑스를 여행했었는데 루트가 비슷하여 흥미로웠습니다. 게다가 50년대에 두 부부가 느낀 프랑스 도시의 느낌이 2000년대 들어서 여행한 저의 느낌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점이 여러모로 공감되고 재밌었어요. 이를테면 생 폴 드 방스(Saint-Paulde-Vence)에서 살고 싶다고 느꼈던 것, 잘 정돈된 깐느(Cannes)에서 머물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것. 또 그때도 마르세유(Marseille)의 대표 음식은 부야베스였고, 모나코(Monaco)는 부자들의 요트가 많기로 유명했다는 것. 그런 이야기들이 제가 여행을 하며 알게되었던 정보나 느낌과 같아 재밌었습니다😊
그리고, YouTube에 김환기 작가를 검색해보니 작가의 다큐멘터리가 있더라고요. 작가의 지인 인터뷰를 통해 세계적인 작가가 되기까지 많은 고민을 해왔던 그의 모습과 또 발자취에 대하여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습니다. 중간에 조병화 시인께서 고인의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흘리실 때 마음이 먹먹해졌어요. 영상에 본 작가의 고향, 전남 신안의 기자도 풍경은 참 아름다웠습니다. 아직 고택의 일부가 남아 있다고 하니, 기회가 되면 가보고 싶어요. (주소: 신안군 안좌면 김환기 길 38-1)
환기 미술관 설립과 위에 언급했던 채색 유리 창 작품 비트라유(Vitrail, 1992, 185x136cm) 모두 아내 김향안 여사님이 진행한 것이라고 해요. 이런 세계적인 작가 곁에서, 작가가 꿈꿔온 것들을 실현해주신 김향안 여사의 글로 마무리 하려 합니다.
‘사랑이란 지성이다.’
지성으로 이해하고 지성으로 교류하며 지성으로 믿어야 오래갈 수 있습니다.
함께 성장해야 함부로 시들지 않습니다.
나의 성장이 그의 성장을 이끌고 그의 성장이 또 나를 성장하게 하면서 서로에게 점점 잘 맞는 반쪽이 되어가는 일.
사랑이란 함께 성장하는 일입니다.
– 김향안 에세이 <월하의 마음> 일부
🔖 환기미술관: http://www.whankimuseum.org/new_html/main.php
📍김환기 미술관: